2005년 04월 01일
독도분쟁 - 근본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日 우경화 움직임은 민주주의 위기서 비롯"
최근 독도분쟁으로 얼룩져가고 있는 한일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볼 수 있는 기사입니다. 독도분쟁의 근본적 원인은 군국주의적 움직을 제어할 수 없는 허약한 민주주의탓으로 이는 투쟁으로 얻어낸 한국의 민주주의과 달리 전공투 실패 후 어느 것도 시민들의 힘으로 획득되어지지 않은, 단순히 주어진 것에 불과한 일본의 민주주의는 군국주의자들의 노름에 힘없이 부정되고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반일감정이 높아져 일본 때리기에 모두 앞장서는 요즘입니다만, 독도분쟁의 해결점은 한국에게 있지 않고 일본 자신에 있습니다. 일본의 무력한 민주주의 헛점이 군국주의의 부활을 외치는 자들에게 쉽게 휘둘린 결과 독도분쟁이 일어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독도분쟁을 해결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일본의 내부에서 분출되고 있는 군국주의적 열망은 끊임없이 영토확장을 요구하고 이에 대한 압력을 일본정계에서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강연을 했던 타카하시 테츠야 도쿄대 교수는 한국에서도 출판된 '국가주의를 넘어서'의 글에서 홀로코스트 부정론과 일본판 부정론을 비교해 얼마나 유사한지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글에서 빌려오자면
홀로코스트 부정론
1. 홀로코스트는 없다. 절멸 작전의 상징인 수용소의 가스실도 없었다.
2. 나치의 '유태인 문제의 최종 해결'이란 절멸이 아니라, 유태인의 동방 이송 또는 추방이었다.
3. 나치즘에 의한 유태인 희상자 수는 600만이나 500만이 아닌 훨씬 소수(20만, 100만 등)이고 게다가 그것은 학살의 희생자가 아닌 전쟁중의 불가피한 희생자에 불과하다.
4. 제2차 세계대전의 책임이 독일에는 없다. 독일에 있다면 유태인에게도 있다.
5. 1930년대, 1940년대에 인류의 중대한 적은 나치 독일이 아니라 스탈린 지배의 소련이었다.
6. 홀로코스트는 연합군, 주로 유태인들, 특히 시오니스트 선전 활돌에 의해 날조된 것이다.
일본판 부정론
1. 남경 대학살은 없었다. 성 노예제(sexual slavery)로서의 일본군 위안소 제도도 없었다.
2. '종군 위안부'란 성노예가 아니라 '단순히 상 행위', '매춘부'에 불과하다.
3. 남경 사건의 중국인 희생자 수는 중국측이 말하는 30만도, 일본의 역사 교과서가 채용하는 십 수만에서 20만도 아니며 '최대한 만 명'으로, 일반 사민 사상자는 안전구 국제위원회의 보고가 '전부 옳다고 해도 47명'에 불과하다.
4. 조선의 식민지화와 중일 전쟁의 책임은 일본에는 없다. 책임은 오히려 러시아와 구미의 위협에 위기 의식을 갖지 못해 근대화가 늦은 조선과 중국측에 있다.
5. 일본의 아시아 진출 시기에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진정한 위험은 일본이 아니라, 러시아(소련) 및 구미 열강이었다.
6. 남경 대학살, '종군 위안부' 문제는 '국내외의 반일 세력'의 선전 활동에 의해 날조된 것이다.
창의성 없게도 일본판 부정론은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둘의 사정이 다른 것은 홀로코스트는 전세계적으로 인정되고 그 영향력으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은 법적 처벌을 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이런 주장이 아무런 여과없이 퍼지고 있고 심지어 역사교과서에도 침투되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결국 이런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원인은 부정론이 판칠 수 있게 만드는 터무니없게 낮은 세계사적 인식과 민주주의의 가치, 그리고 평화에 대한 열망이 일본 시민들에게 스스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다카하시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익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에 맞서고 있는 일본 시민사회는 한국인과의 연대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일본 시민 사회의 성숙과 이를 돕는 연대 활동의 강화. 이것이 독도분쟁을 비롯한 한일 갈등의 근본적 해결점이 될 것입니다.
최근 독도분쟁으로 얼룩져가고 있는 한일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볼 수 있는 기사입니다. 독도분쟁의 근본적 원인은 군국주의적 움직을 제어할 수 없는 허약한 민주주의탓으로 이는 투쟁으로 얻어낸 한국의 민주주의과 달리 전공투 실패 후 어느 것도 시민들의 힘으로 획득되어지지 않은, 단순히 주어진 것에 불과한 일본의 민주주의는 군국주의자들의 노름에 힘없이 부정되고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반일감정이 높아져 일본 때리기에 모두 앞장서는 요즘입니다만, 독도분쟁의 해결점은 한국에게 있지 않고 일본 자신에 있습니다. 일본의 무력한 민주주의 헛점이 군국주의의 부활을 외치는 자들에게 쉽게 휘둘린 결과 독도분쟁이 일어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독도분쟁을 해결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일본의 내부에서 분출되고 있는 군국주의적 열망은 끊임없이 영토확장을 요구하고 이에 대한 압력을 일본정계에서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강연을 했던 타카하시 테츠야 도쿄대 교수는 한국에서도 출판된 '국가주의를 넘어서'의 글에서 홀로코스트 부정론과 일본판 부정론을 비교해 얼마나 유사한지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글에서 빌려오자면
홀로코스트 부정론
1. 홀로코스트는 없다. 절멸 작전의 상징인 수용소의 가스실도 없었다.
2. 나치의 '유태인 문제의 최종 해결'이란 절멸이 아니라, 유태인의 동방 이송 또는 추방이었다.
3. 나치즘에 의한 유태인 희상자 수는 600만이나 500만이 아닌 훨씬 소수(20만, 100만 등)이고 게다가 그것은 학살의 희생자가 아닌 전쟁중의 불가피한 희생자에 불과하다.
4. 제2차 세계대전의 책임이 독일에는 없다. 독일에 있다면 유태인에게도 있다.
5. 1930년대, 1940년대에 인류의 중대한 적은 나치 독일이 아니라 스탈린 지배의 소련이었다.
6. 홀로코스트는 연합군, 주로 유태인들, 특히 시오니스트 선전 활돌에 의해 날조된 것이다.
일본판 부정론
1. 남경 대학살은 없었다. 성 노예제(sexual slavery)로서의 일본군 위안소 제도도 없었다.
2. '종군 위안부'란 성노예가 아니라 '단순히 상 행위', '매춘부'에 불과하다.
3. 남경 사건의 중국인 희생자 수는 중국측이 말하는 30만도, 일본의 역사 교과서가 채용하는 십 수만에서 20만도 아니며 '최대한 만 명'으로, 일반 사민 사상자는 안전구 국제위원회의 보고가 '전부 옳다고 해도 47명'에 불과하다.
4. 조선의 식민지화와 중일 전쟁의 책임은 일본에는 없다. 책임은 오히려 러시아와 구미의 위협에 위기 의식을 갖지 못해 근대화가 늦은 조선과 중국측에 있다.
5. 일본의 아시아 진출 시기에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진정한 위험은 일본이 아니라, 러시아(소련) 및 구미 열강이었다.
6. 남경 대학살, '종군 위안부' 문제는 '국내외의 반일 세력'의 선전 활동에 의해 날조된 것이다.
창의성 없게도 일본판 부정론은 홀로코스트 부정론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둘의 사정이 다른 것은 홀로코스트는 전세계적으로 인정되고 그 영향력으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사람은 법적 처벌을 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에서는 이런 주장이 아무런 여과없이 퍼지고 있고 심지어 역사교과서에도 침투되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결국 이런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원인은 부정론이 판칠 수 있게 만드는 터무니없게 낮은 세계사적 인식과 민주주의의 가치, 그리고 평화에 대한 열망이 일본 시민들에게 스스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다카하시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익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에 맞서고 있는 일본 시민사회는 한국인과의 연대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일본 시민 사회의 성숙과 이를 돕는 연대 활동의 강화. 이것이 독도분쟁을 비롯한 한일 갈등의 근본적 해결점이 될 것입니다.
# by | 2005/04/01 15:08 | 이성의 늪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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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저 홀로코스트 부정론은 내가 보기엔 양비론과 잘못을 저지를 사람의 변명적 자존의식이 적당히 섞인 거라고 생각되는데, 지금의 일본은 그런 어린애같이 허약한 의식 속에 잠겨있는 것 같아.
일본은 대국이 될 만한 여러가지 면모를 분명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하루빨리 소시민적인 의식을 버리고 스스로가 모든 사실을 받아들여야 건강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을텐데, 지금 여당에 대거 포진한 우익들의 작태를 보면 요원해; 방안에 토사물을 닦아낼 생각은 안 하고 카펫으로 덮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일본의 군국주의 애들은 국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그 환상을 위해 죽는 것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오. 성숙한 인간이 묵묵시 살아가기를 원하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미성숙한 인간이 환상을 위해 죽는다는 것을 원한다는 건 이 애들에 대한 뼈아픈 지적같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