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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예비군로소이다(1)

(쓸데없이 길다 ... 숨겨둬야지...)

이 글은 이제 막 예비군이 되는 1년차 예비군에게 예비군은 이러한 것이다란 것을 알리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옷 잘 껴입고 갑세! T.T



제대를 한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어느새 날아온 한통의 '예비군 교육훈련 소집 통지서'! 최근 일본과의 독도분쟁으로 뒤숭숭한 마음으로 일본과 전쟁 벌어지면 '부산에 있는 예비군들이 먼저 떼우는건가'란 가당치도 않은 불온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찰라 급습해온 통지서. 사실 그 전에 '예비군 훈련일정을 보고 선택해주세요'란 정체불명 동예비군 이메일을 보고 확인해보려고 했으나 주민등록번호 인증도 모자라서 군번 인증을 요구하는 해괴함에 무릎을 꿇고 '군번 따윈 몰라. 귀찮아 퍽유'를 외치면 그냥 내팽겨쳤었다. 그러나 그것이 역습이 될 줄이야. 바로 3월달 1차 향방훈련에 걸려서 3월 24일 오후 1시까지 오란 통지서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복학을 할 걸 그랬나?

오랜만에 예비군 훈련을 간다고 10시에 기상. 통지서에 보니 가는데 1시간 걸린다고 되어 있었고 어머니의 말씀으로 버스타고 도착해도 제법 올라가야 한다는 말에 더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더욱 맘에 걸리는 것은 '군복이 없다는 것'. 믿기지 않을 일이겠지만 훈련오라고 하면서 군복도 없이 어떻게 오라는 거냐면서 통지서가 온 날 동예비군에 전화를 찔러봤다. 그쪽에선 땀 삐질삐질 흘리는 듯한 목소리로 '부대로 가시면 빌려줍니다. 선배님'. 흐음? 그 덕분에 군복 빌릴 일이 생각나서 더욱 일찍 일어나 가게 되었다. 11시 10분쯤에 출발. 가다 보니 바로 눈 앞에서 지나가는 247번 좌석 버스. 뭔가 심상치 않은데? 무엇이든 아는 네이버지식인에 물어본 결과 배차시간은 무려 17분. 사실 기다리는 건 힘든 일은 아니었으나, 문제는 이 내린다는 것이다. 그리 흐리지도 않는데 갑자기 눈이 쏟아지는 것이었다. 함박눈이 아닌 손에 닿으면 사라지는 싸락눈이 5분도 안 되어 하늘을 뒤덮었다. 히아~ 멋진데. 상당히 멋졌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조금 기다리니 군복을 입고 예비군들의 특허 발걸음인 어슬렁 어슬렁 발걸음을 하면서 예비군 훈련장에 가는 사람이 나타났다. 오옷. 저 사람 따라가면 되겠군! 근데 어랏 247번을 타지 않고 50번을 타고 가버렸다. 50번은 일반 버스, 247번은 좌석버스. 한시간이나 걸린다면 좌석버스를 타야 되는 거 아냐? 저 사람을 따라가면 되겠구만 했던 나의 안일한 생각을 신이 구타하듯 그 사람은 떠나버렸다. 5분 후에 247번 버스는 왔고 그것을 탔다.

1시간 걸리니깐 잠이나 자둘까 했지만 처음 가보는 곳이라 거리 감각이 전혀 없는 고로 긴장이 되었는지 잠이 오지 않았다. 30분까지 늦으면 1시간 보충 교육이라던가 1시간까지 늦으면 다시 오라고 하라던가 그 이후로 늦으면 무단 불참자가 되어서 고발된다던가 ... 아직 법을 어긴 적 없는 성실한 나에게 이건 꽤나 프레셔가 되었나보다. 자다가 지나쳐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월평고개 월평고개...' 내릴 곳을 생각하면서 기다렸다. 잠시 후 몇 정거장을 지나자 다시 군복을 입은 사람이 탔다. 오 럭키 ... 저 사람을 따라가면 되겠군. 하지만 일은 그리 쉽게 풀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30-40분 후에 내리게 됐는데 내리자 말자 훈련장 표지판이 있었다. 문제는 길이 두 갈래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느 쪽으로 가란 말이지? 표지판의 화살표 방향을 보니 두 갈래의 길 중 폭이 좁은 곳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훈련장에는 차도 많이 진입할 터! 저렇게 좁은 곳에는 차가 진입하기 어려웠다. 그래 나의 탁월한 추리감각은 저 큰 길이 훈련장으로 가는 길이라고 외치고 있어. 결정하고 가는 순간 군복 입은 사람이 두 갈래의 길도 아니고 아예 딴 길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버스가 다니는 차도를 따라 올라가는 그 사람. 뭐냐? ... 순간적으로 헷갈렸지만 나의 탁월한 추리감각을 믿고 큰 언덕길로 올라갔다. 조금 올라가자 레미콘 차들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꽤나 혼잡했다. 자칫 잘못하면 압사 당할 위협을 느끼면서 (왠만큼 커야 말이지) 열심히 올라갔다. 올라가자 레미콘 차들이 정차하는 곳, 레미콘 회사가 있었다. 어랏? 어딜 봐도 레미콘 차밖에 없었고 올라가는 길이 없었다. 헉... 그런? 내가 당했단 말야. 아까 전의 좁은 길이 훈련장으로 가는 길이었단 말이야? 표지판의 화살표가 섬세하게 가리키던 그 길이 바로 정답이었단 말인가????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내려왔다. 그런데 어랏 아까전에 차도로 가던 사람이 이 길로 올라오는게 아닌가? 흐응... 심상치 않은데... 하지만 일단 결정한데로 가는 것이 사나이 정신(...). 다시 내려가 좁은 길로 가봤다. 한참을 가다보니 어랏어랏... 논밭이 펼쳐지고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들어와버렸다. 이게 뭐냐? 나 또 당한거야? 하루에 이렇게 많이 당해도 되는거야? 고개를 들어 높은 언덕을 바라보니 태극기가 걸려있는 것을 보게 됐다. 훗 ... 그럼 그렇지 ... 나의 추리력이 틀릴리가 없어. .... 젠장. 다시 큰 길로 올라가봤다. 다시 가보니 레미콘 회사 옆 쪽에 난 언덕길이 있었다. 처음 올라갔을 때는 레미콘 차들이 그 길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신이여 ... 오랜만에 산에 왔다고 등산 좀 하라는 겁니까?

여튼 올라가보니 시간은 12시 15분 정도. 헛 ... 본의 아니게 언덕길을 오르락 내리락 했는데도 시간이 무척 많이 남았다. '소요 1시간'이란 말은 낚시였단 말인가. 낚였다란 분노를 억누르고 정문앞에 가보니 큰 간판이 서있었다. '나의 복장 상태는?'이란 재밌는 간판이었는데 한쪽은 모범적인 예비군 복장을 하고 똑바로 서있는 그야말로 군인다운 사진이 붙어져 있었고 다른 한쪽은 고무링도 없고 군화도 아닌 운동화를 신고 있고 모자를 비뚤하게 버클은 했는지 안 했는지 윗 옷을 바지 속에다 넣지도 않고 게다가 포즈마저 비뚤한 그야말로 '참다운' 예비군 사진이었다. 아 멋지다. 분명 후자를 두고 복장을 잘 챙기란 말이겠지? 마치 다이어트 광고를 할 때 체중감량 전 사진은 어중간한 포즈로 잡고 체중감량 후 사진은 나이스 포즈를 잡아서 어필하려는 싸구려 기법을 예비군에서도 도입할 줄이야! 이거야 원 시대가 변했군. 너무 이른 시간이길래 앞에 서 있는 군인에게 군복 없어서 갈아입어야 하는데라고 물어봤는데 나중에 조교들이 나오면 옷 준다고 기다리라고 했다. 조금 기다리니 예비군들이 슬슬 모이기 시작했는데 자가용 타고 온 사람들도 은근히 많았다. 흐응 ... 쳇. 시간이 되서 들어가니 군복 필요한 사람은 따라오라고 한다. 가보니 창고. 쓰레기에 가까운 군복 더미를 보여주면서 골라 입으라고 한다. 웃.. 축축해. 오랫동안 햇빛을 받지 못 해 눅눅하다 못 해 축축해진 군복을 입으라니... 훗. 어쩔 수 있나. 그나마 좋은 것들로 골라서 입었다. 웃... 하다못해 햇빛에 말려두기나 하지. 옆사람은 '으아 이거 피부병 걸리는 거 아냐!'라고 궁시렁궁시렁 거렸다. 하지만 군복의 애로사항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었다. 고무링은 사야 된다면서 다시 훈련장 입구로 데려가서 사서 쓰게 만들고 추하게도 그 앞에서 고무링을 쓰고 있었다. 오랫동안 고무링을 써본 적이 없어 현역한테 물어봤더니 어이없는 표정으로 가르쳐 주었다. 고무링 착용하고 운동장으로 올라가보니 다들 띄엄띄엄 운동장에 뻘줌하게 서 있었다. 나도 운동장 한 켠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언덕 중턱이라 바람막이가 없어서 바람이 그대로 전해졌는데 무척 매서웠다. 후웃 ... 제법 추운데? 하지만 이것이 혼쭐난 훈련의 시작일 줄은 아직 몰랐다.

by CatonMe | 2005/03/25 23:18 | 직관의 세계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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